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광주가 기억하는 그 이름, 강·용·주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되어 ‘광주 치유’에 나서다 스스로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 말했다. 고문, 감옥살이, 간첩 낙인으로 온갖 사회적 차별을 견뎌낸 중요한 경험, 그래서 같은 고통을 당한 이들에 대한 공감이 고문생존자인 자신이 치유자에 적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보다 인간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이 자리에 나섰다고도 했다. 전 세계 트라우마센터는 200여개.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세운 남아공화국도 현재 2∼3개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 중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배상, 기념사업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당한 인간에 대한 치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던 그에게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광주가 발 벗고.. 더보기 [강용주의 '인권광장']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 세계인권선언 12월 10일.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지 67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48년 유엔 총회는 홀로코스트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범죄들이 벌어진 2차 세계 대전을 반성합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그 결과로 태어났지요.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야만적 행위를 야기’했다는 성찰과 ‘언론과 종교의 자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길 바라면서요. 세계인권선언과 관련한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해였지요. 유엔은 ‘Know Your Rights 2008’ 캠페인을 전개하였고, 세계적으로 축하 행사가 잇따랐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캠페인’ 같은 다채로운.. 더보기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지난 9월 22일, 나는 광주에 가는 길에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그의 어머니 조순선씨도 함께인 자리였다. 5 년만이었다. 이제 그는 43살, 어머니는 79살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23 년만에야 의대를 졸업하고, 이제 인턴으로서 나주의 한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사실 그와 나는 겨우 네 번째의 만남이었고, 그것도 세 번은 1999년 2월과 3월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5 년만에 처음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주 어린 시절 꾀를 벗고 알아온 '꾀복쟁이' 친구처럼 가깝게만 느껴졌다. 오랜 학교 공부하는 데 힘들지 않았냐니까, 예의 '나이 영치론'을 들고 나온다. "나이 먹은 체 하면 요즘 애들이 안 끼워주잖아요. '왕따'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14년 동안 .. 더보기 [시론/강용주]광주, 이제는 치유의 공동체로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면 우리 국민은 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위안부는 필요했다”거나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며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망언이 심각한 이유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자꾸 헤집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가해자 처벌 없이 지나가면, 그 사건은 우리에게 계속 생채기를 내는 것입니다. 나쁜 역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망언을 비난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방송은 대통령도 참석하여 국가기념일로 치르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탈북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습니다. 작년에 국가정보원에서는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시민들..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