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김대중 정부는 억울한 양심수들을 사면해 주면서 ‘준법서약’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하면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한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문을 요구하는 격이었으니, 용주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을 하루빨리 품에 안고 싶었지만 준법서약 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슬쩍 물어 보았다. “준법서약이란 게 뭐냐?”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챈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 오래오래만 살아주세요.” 감옥 생활을 더 할테니 어머니도 힘내서 아들이 당당히 석방되는 날을 기다려 달라는 뜻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 용주는 드디어 석방됐고, 늦깍이 의대생으로 공부를 계속하게 됐다. 당시 용주의 모습을 김환균 PD(언론노조 위원장)이 취재해서 방송한 적이 있다. 김 PD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밤중이라도 병원 문 두드리는 사람 있으면 꼭 열어주어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라. 아무리 돈 없는 사람이라도 아프다면 꼭 치료해 주어라.” 용주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면목동에서 가정의학 전문의로 일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공간인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조순선 여사는 올해 90살 되셨는데, 옥중의 아들이 건넨 덕담(?) 때문인지 지금도 건강하시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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