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썸네일형 리스트형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 Tine Thing Helseth - Mitt lille land / Laleh - Some Die Young (22.7.12) Tine Thing Helseth - Mitt lille land / Laleh - Some Die Young (22.7.12)이 노래는 노르웨이 우토야섬 희생자를 위한 트렘펫 곡이다. 1주기 추모제에서 연주된. 유튜브 화면의 하트는 oslo + love = oslove다. 테러를 딛고 일어나 기억과 추모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상징이다.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정부 청사을 폭파하고, 오슬로 인근 우토야 섬에서 청소년들을 무차별 총격해 77명을 살해한 테러범 브레이빅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5명중 한명으로 MB를 들었다. 노르웨이의 이민정책과 포용적 다문화에 불만이었는데, MB는 이민정책에 엄격하고 이주민에 불포용적이고 단일민족을 강조하기 때문이라나... (월간 참여사회 4월호-이채훈 MBC 해직 PD.. 더보기 [뉴스데스크]희망인물-강용주 5.18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해 주는 곳이 2년전 문을 연 광주 트라우마센터인데요, 이곳 센터장인 강용주씨도 5.18과 시국 사건으로 고통받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입니다. 광주MBC가 선정한 희망인물, 오늘은 치유와 희망의 공동체를 꿈꾸는 강용주씨를 소개합니다. 박수인 기자 ◀VCR▶ 광주 트라우마센터장인 강용주씨에게는 흔치 않은 이력이 있습니다. 5.18 때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고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학생운동을 하다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14년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뒤늦게 의사의 꿈을 이루고 트라우마센터장으로 돌아와 다시 광주를 마주하기까지 강용주씨에게 5월은 고통의 기억이었습니다. ◀INT▶ 강용주 국가폭력의 고통을 직접 경험한 그가 트라우마센터를 맡게 된 건 운명이었는지.. 더보기 [YTN라디오] 광주 시민들, 5월 18일 되면 아직도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려 -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우리나라 최초로 트라우마 센터가 만들어져서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강용주 http://radio.ytn.co.kr/program/?f=2&id=35976&s_mcd=0214&s_hcd=01 더보기 [ebs news] 아직도 아픈 광주, '트라우마센터'를 가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망가진 일상의 삶을 회복하는 게 하나의 측면이라면, 두 번째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원인에 대한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http://home.ebs.co.kr/ebsnews/menu3/newsFocusView/10313698/N 더보기 [미디어오늘] 이채훈의 힐링클래식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98년, 김대중 정부는 억울한 양심수들을 사면해 주면서 ‘준법서약’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하면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한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문을 요구하는 격이었으니, 용주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을 하루빨리 품에 안고 싶었지만 준법서약 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슬쩍 물어 보았다. “준법서약이란 게 뭐냐?”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챈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 오래오래만 살아주세요.” 감옥 생활을 더 할테니 어머니도 힘내서 아들이 당당히 석방되는 날을 기다려 달라는 뜻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 용주는 드디어 석방됐고.. 더보기 광주가 기억하는 그 이름, 강·용·주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되어 ‘광주 치유’에 나서다 스스로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 말했다. 고문, 감옥살이, 간첩 낙인으로 온갖 사회적 차별을 견뎌낸 중요한 경험, 그래서 같은 고통을 당한 이들에 대한 공감이 고문생존자인 자신이 치유자에 적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보다 인간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이 자리에 나섰다고도 했다. 전 세계 트라우마센터는 200여개.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세운 남아공화국도 현재 2∼3개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 중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배상, 기념사업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당한 인간에 대한 치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던 그에게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광주가 발 벗고.. 더보기 <내가 만난 사람> '최연소 장기수에서 의사로' -강용주 '불굴의 전사’넘어 '인권'위해 혼신한 사람 ‘최연소 장기수’ 강용주가 의사가 됐다는 소식은 서설과 같았다. 지난달 16일 그가 제68회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타전되자 인터넷에서도 ‘따뜻한 축하’가 잇따랐다. 불행한 시대를 만나 ‘간첩 죄’를 뒤집어쓰고 장장 14년동안 옥살이를 했 던 ‘최연소 장기수’를 기억하는 네티즌들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천천히 길게 가시기 바랍니다. 흐미 좋은거….” “강용주를 기억합니다. 그 사람 공판에 갔었거든요. 나중에 나오는 것도 봤고…서울에 무슨 일로 갔는데 지하철 구멍 빠져나오느라고 고생했다는 기사도 읽었고…이번에 시험 들었다는 것도 알고…그리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고 양반이 나중에 병원 차리면 학생들 데리고 견학가렵니다”라고 기뻐했다. http:/.. 더보기 [이털남2 - 342회]'광주'의 강용주를 만나다 [이털남2 - 342회]'광주'의 강용주를 만나다 33년의 시간이 흐른 5.18광주민주화운동. 역사에 묻혀지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일상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었다. 같은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강용주 센터장을 '보이는 팟캐스트'에서 만나본다.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