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주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향신문]강용주 “인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다” 옛날 광부들은 갱에 들어가기 전 카나리아를 먼저 안으로 날려보았다. 먼저 날아들어간 카나리아의 소리가 들리면 갱이 안전하다는 뜻이고, 카나리아가 울지 않으면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라 여기고 광부들은 그 갱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자신의 생사를 걸고 광부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강용주씨(48)는 스스로를 “뒤집어진 광산의 카나리아”라고 했다. 1985년 구미(歐美)유학생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고문에 못이겨 거짓 자백을 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운동권 학생, 14년 동안이나 복역하면서도 준법서약을 거부한 비전향수,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출소한 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받는 보안관찰 처분자. 이런 ‘신분’인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때 만인의 자유가 똑같이 보장될.. 더보기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지난 9월 22일, 나는 광주에 가는 길에 강용주를 다시 만났다. 그의 어머니 조순선씨도 함께인 자리였다. 5 년만이었다. 이제 그는 43살, 어머니는 79살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23 년만에야 의대를 졸업하고, 이제 인턴으로서 나주의 한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사실 그와 나는 겨우 네 번째의 만남이었고, 그것도 세 번은 1999년 2월과 3월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5 년만에 처음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주 어린 시절 꾀를 벗고 알아온 '꾀복쟁이' 친구처럼 가깝게만 느껴졌다. 오랜 학교 공부하는 데 힘들지 않았냐니까, 예의 '나이 영치론'을 들고 나온다. "나이 먹은 체 하면 요즘 애들이 안 끼워주잖아요. '왕따'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14년 동안 .. 더보기 [강준만]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2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2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4158 https://books.google.co.kr/books?id=DfbYBAAAQBAJ&pg=PT398&lpg=PT398&dq=강용주&source=bl&ots=CeXuRKpa3h&sig=96sy_GxWucn5b5nS-oAs-LRjN2s&hl=ko&sa=X&ved=0CCIQ6AEwATg8ahUKEwjn8r2TxdzGAhUiY6YKHS16C2Y#v=onepage&q=강용주&f=false 더보기 [한겨레 프리즘] 킬링 아사드, 힐링 강용주 / 조일준 #힐링(치유) “고문은 한 사람의 영혼에 죽음을 각인시키는 행위다. … 힐러리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고문 생존자가 다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온 사회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강용주, 인터뷰) 의사 강용주(50)는 그 자신 모진 고문의 피해자다. 전남대 의대 재학 때인 1985년 이른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잡혀가 온갖 혹독하고 야만적인 고문 끝에 허위자백을 하고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앞서 1980년 5월 그는 대학입시를 앞둔 고3이었다. 광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해 책 대신 총을 들었다. 5월27일 새벽 계엄군이 최후의 살육을 위해 전남도청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너무 무서워 .. 더보기 [시론/강용주]광주, 이제는 치유의 공동체로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면 우리 국민은 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위안부는 필요했다”거나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며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망언이 심각한 이유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자꾸 헤집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가해자 처벌 없이 지나가면, 그 사건은 우리에게 계속 생채기를 내는 것입니다. 나쁜 역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망언을 비난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방송은 대통령도 참석하여 국가기념일로 치르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탈북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습니다. 작년에 국가정보원에서는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시민들.. 더보기 <내가 만난 사람> '최연소 장기수에서 의사로' -강용주 '불굴의 전사’넘어 '인권'위해 혼신한 사람 ‘최연소 장기수’ 강용주가 의사가 됐다는 소식은 서설과 같았다. 지난달 16일 그가 제68회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타전되자 인터넷에서도 ‘따뜻한 축하’가 잇따랐다. 불행한 시대를 만나 ‘간첩 죄’를 뒤집어쓰고 장장 14년동안 옥살이를 했 던 ‘최연소 장기수’를 기억하는 네티즌들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천천히 길게 가시기 바랍니다. 흐미 좋은거….” “강용주를 기억합니다. 그 사람 공판에 갔었거든요. 나중에 나오는 것도 봤고…서울에 무슨 일로 갔는데 지하철 구멍 빠져나오느라고 고생했다는 기사도 읽었고…이번에 시험 들었다는 것도 알고…그리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고 양반이 나중에 병원 차리면 학생들 데리고 견학가렵니다”라고 기뻐했다. http:/.. 더보기 [이털남2 - 342회]'광주'의 강용주를 만나다 [이털남2 - 342회]'광주'의 강용주를 만나다 33년의 시간이 흐른 5.18광주민주화운동. 역사에 묻혀지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일상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었다. 같은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강용주 센터장을 '보이는 팟캐스트'에서 만나본다.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